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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깨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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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보다 먼저 지명타자 MVP로 불린 사나이

오타니보다 먼저 지명타자 MVP로 불린 사나이

2024.12.01

2024.12.01


 

Editor 송치훈 기자(동아닷컴)
[MLB 파크]


스포츠 전문 기자 경력 10년, 야구 찐팬 경력 30년, 야구에 진심인 그만의 시선으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메이저리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MLB Park와 함께 제작하는 기획 콘텐츠 입니다.

지난 11월 22일, 쇼헤이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지명타자* MVP가 되었다. 타율 0.310, 54홈런, 59도루, 130타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일궈낸 대기록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된 1973년 이후, 50년이 넘도록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사상 첫 지명타자 MVP. 사실 이 자리는 오타니가 아닌 다른 선수의 자리가 될 수도 있었다.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 DH): 투수 대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뜻하며, 수비는 하지 않고 타격만 전문적으로 하는 포지션. 1973년부터 아메리칸리그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MLB

1995년 6월 28일.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는 원정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홈 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가 열렸다.


 

보스턴 펜웨이파크 ©WBSM

원정팀 토론토가 5-1로 앞선 9회초 무사 1루 상황 타석에 들어선 '39세 베테랑 타자'는 상대 투수 데릭 릴리퀴스트의 2구째를 좌측 담장 너머 깊숙한 곳으로 날려 보냈다.

이 타자의 5타수 2안타 3타점 활약에 힘입은 토론토는 보스턴의 9회말 추격을 뿌리치고 이날 경기에서 8-4로 승리를 거뒀다. 이날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200번째 홈런을 기록한 이 베테랑 타자의 이름은 폴 몰리터.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완벽한 타자 중 한 명으로, '타격의 예술가'라고도 불렸다.


몰리터의 홈런 모음 ©greendayrock

몰리터는 이후로도 3시즌 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면서 통산 21시즌 동안 2,683경기에 나서 3,319안타, 234홈런, 1307타점, 1782득점, 504도루, 통산 타율 0.306, 출루율 0.369 장타율 .448, OPS* .817, wRC**+ 122 등의 성적을 기록했다.


*OPS(On-base Plus Slugging):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한 값으로, 타자의 종합적인 공격력을 나타내는 지표

**wRC+(Weighted Runs Created Plus): 리그 평균 타자의 득점 생산력을 100으로 했을 때, 해당 타자의 상대적인 득점 생산력을 보여주는 지표. 122는 리그 평균보다 22% 더 좋은 성적이라는 의미

몰리터는 우타석과 좌타석 모두에서 타격이 가능한 교타자로서의 꾸준함이 강점이었다.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 전체를 통틀어 3,000안타, 500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7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나머지 6명은 타이 콥(4,189안타 892도루), 호너스 와그너(3,415안타 722도루), 에디 콜린스(3,315안타 744도루), 루 브록(3,023안타 938도루), 리키 핸더슨(3,055안타 1406도루), 스즈키 이치로(3,089안타 509도루) 등이다.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몰리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I see Joe DiMaggio."
(조 디마지오**가 보여요.)


*테드 윌리엄스: 1941년 .406의 타율을 기록한 메이저리그 역대 마지막 4할 타자. '가장 위대한 타자'로 불리며, 은퇴 후에도 타격 분석가로서 많은 선수들의 타격을 평가했다.

**조 디마지오와의 비교: 조 디마지오는 뛰어난 타격과 수비, 그리고 경기 운영 능력을 겸비한 '완벽한 선수'의 대명사였다. 테드 윌리엄스가 몰리터를 보고 디마지오가 떠오른다고 한 것은, 몰리터가 타격뿐 아니라 베이스러닝과 수비 등 야구의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는 최고의 찬사였다.

1977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된 몰리터는 1978년 밀워키에서 내야수로 빅리그에 데뷔했다. 당시 밀워키의 감독이었던 조지 밤버거는 이렇게 말했다.


"He had tremendous instincts and you could see right away he was a talented athlete. Not only physically, but mentally too. He played the game like he had been up here for years."
(몰리터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재능 있는 선수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수년 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경기를 뛰었다.)


 

1978년 폴 몰리터의 루키 카드

이후 몰리터는 1982시즌 160경기에서 타율 0.302, 201안타, 19홈런, 71타점, 136득점(리그 1위) 등의 성적으로 맹활약하며 밀워키의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끌었고, 1987시즌에는 39경기 연속 안타를 치며 역대 7번째로 긴 연속 안타 기록을 만들었다. 부상으로 인해 118경기에만 출전했지만, 0.353의 고타율을 기록했고, 득점(114개)과 2루타(41개)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몰리터의 하이라이트 ©World of Baseball

15시즌 동안 밀워키에서 뛰었던 몰리터는 1992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리면서 밀워키에 잔류하길 원했지만, 밀워키에서는 잦은 부상과 노쇠화를 이유로 계약을 거부했다.


*FA(Free Agent): 구단과의 계약이 만료되어 어느 구단과도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는 선수를 뜻한다.

결국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게 된 몰리터는 이적 첫 해인 1993시즌 160경기에서 타율 0.332, 211안타(리그 1위), 22홈런, 111타점, 121득점, 출루율 0.402. 장타율 0.509 등 맹활약하며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첫 100타점 시즌을 기록한 선수가 되기도 했다.

몰리터는 월드시리즈에서도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타율 0.500(24타수 12안타), 2홈런, 8타점, 10득점(월드시리즈 최다 득점 타이기록)을 기록하며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1993시즌 토론토에서의 우승이 몰리터의 유일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였다.


몰리터의 1993 월드시리즈 경기 ©MLB

몰리터는 정규시즌 동안에도 지명타자로 맹활약하며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지명타자가 MVP 투표 2위에 오른 것은 이 시즌의 몰리터가 최초다. 이후 2024시즌 오타니 쇼헤이가 지명타자 최초로 MVP를 차지하기 전까지 지명타자가 MVP 투표에서 2위에 오른 것은 2000시즌의 프랭크 토마스, 2005시즌의 데이빗 오티스뿐이었다.

밀워키에서 우려하던 바와 달리 토론토에서 아무런 부상 없이 3시즌을 풀로 뛴 몰리터는 40세이던 1996시즌 고향팀 미네소타 트윈스와 자유계약선수로 계약했다.

1996시즌 40세의 나이에 타율 0.341, 113타점을 기록하며 225안타로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했고, 1930년 샘 라이스 이후 66년 만에 한 시즌 200안타를 기록한 40세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225안타를 기록한 몰리터 ©MLB

41세 시즌에 타율 3할을 기록했으며, 42세였던 마지막 시즌에도 141안타를 때려낸 몰리터는 1998년 시즌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은퇴와 동시에 밀워키는 그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빛나는 성적을 기록한 몰리터는 2004년 명예의전당 투표에서 85.2%의 높은 지지를 받아 명예의전당에 입성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몰리터 ©MLB

주 포지션은 3루수였지만 몰리터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지명타자로 보는 시선이 많다. 통산 2,683경기 중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경기가 1,169경기로, 야수로 선발 출전한 경기수인 1,478경기보다 더 적기는 하지만 주 포지션인 3루수로의 선발출전이 786경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몰리터는 미네소타 트윈스 벤치코치와 시애틀 매리너스 타격코치를 거쳐 2014년 미네소타의 코치로 한 시즌을 보낸 뒤, 2015시즌 미네소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5시즌에는 시즌 막판까지 와일드카드* 진출을 놓고 다투면서 미네소타에 2010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안겼고,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스포팅뉴스에서 선정하는 '2015년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됐다.


*와일드카드: 디비전 우승팀이 아니더라도 각 리그에서 성적이 좋은 팀들에게 추가로 주어지는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의미

스포팅뉴스 올해의 감독상을 축하하는 트윈스의 X ©Minnesota Twins

두 번째 시즌인 2016시즌은 메이저리그 최하위에 그쳤지만 2017시즌 와일드카드 2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는 대반전을 만들어냈다. 전년도 100패 팀이 다음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고, 이 성과로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된 몰리터는 프랭크 로빈슨에 이어 명예의 전당 선수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이 상을 수상했다.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상: 스포팅뉴스가 수여하는 올해의 감독상이 1936년부터 시작된 가장 오래된 감독상이라면,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상은 MLB 사무국이 2014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여하는 상이다.

타격의 달인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라 올해의 감독상까지. 폴 몰리터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야구의 모든 것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오타니 쇼헤이가 지명타자 최초의 MVP를 차지하기까지, 그가 1993년에 보여준 지명타자로서의 맹활약은 30년 동안 깨지지 않은 기록으로 남았다. 40세에 달성한 225안타에 이어 감독상까지. 나이를 넘어선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지금도 많은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폴 몰리터가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200홈런을 달성한 경기에서 사용된 공 (이랜드뮤지엄 소장)
몰리터의 친필사인과 ‘Paul Molitor - 200th home run - Toronto vs. Boston - June 28’(폴 몰리터 200홈런, 토론토 vs 보스턴 6월 28일)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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